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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9 모 여중 이야기..
世上2010. 3. 9. 12:31

덕포동.

거기엔 한일 시멘트가 있고 그 바로 옆에 굴다리가 있다굴다리를 기점으로 밑 동네는 덕포 1윗 동네는 덕포 2동인데.. 덕포 2동은 그 당시 신축 아파트 단지와 부산여대(지금은 신라대)가 위치해 있어 좀 살기가 괜찮은 동네이고 덕포 1동은 낡은 다세대, 15년 전에도 재개발해야 할 것 같은 5층짜리 아파트들이 몰려 있어 소위 말해 살기가 어려운 동네였다 


한일 시멘트를 지나 첫번째 골목에 들어서면 낡은 구멍가게들이 보이고 그길을 따라 주욱 걸으면 꼬불꼬불 연결되어 있는 골목길과 또 다른 구멍가게들, 낡은 5층짜리 아파트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뒤, 운동장 100m 직선거리가 나오지 않아 교문 밖까지 뛰어야하는 덕포여중이 있었다.


나는 덕포여중에 3학년 2학기 때 전학 가서 반년을 그곳에서 보냈다.

 

이미 2년 반이나 다닌 예전 중학교에서 졸업을 하고 싶었으나(실제로 2학년 담임 선생님께서도 왜 가냐며 말리셨던.) 연합고사라는 나름 중요한(쿨럭..) 시험을 쳐야하는 중 3 1시간 반거리나 되는 통학시간을 견디기엔 너무 힘들다는 어머니의 주장으로 인해 나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이라는 것을 가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덕포여중을 내 기억에서 뭉텅 잘라내고 싶을 만큼 싫어한다


비슷한 동네끼리 모이는 고등학교에서도 나는 덕포 출신 친구가 하나도 없다. 지금 같이 정신 못차리고 홍대를 누비며 카페나 술집을 드나드는 10년지기 친구가 나 덕포여중 나왔잖아. 전에 너한테 이야기한 것 같은데?라며 말을 했을 때도 ? 난 몰랐는데? 라고 했을만큼. 덕포여중 네 글자는 내 머릿속에 입력되는 즉시 포맷되어 버리는..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은 단어 중 하나다.

 

전학해서 가을학기 첫 시험을 친 직후의 일이다.  

어쩌다보니 내 성적이 좋게 나왔다. 그 결과 그 반의 아이들 대부분이 한 등수씩 밀려버리는 상황이 발생했고, 그 후로 어떤 한 아이가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너때메 반애들 등수 하나씩 다 밀렸으니까 뭐라도 사라 과자 돌려라라는 말을 하더니 급기야 어디서 저런게 굴러 들어왔노전에 있던 데로 가라 등등 모든 반 아이들이 있는 앞에서 나에게 폭언을 쏟아부었다

아마 중고딩 때 흘렸을 눈물의 약 80%는 거기서 다 흘리고 진지하게 가출을 생각해봤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착한 모범생 맏딸 컴플렉스인 나는 그저 생각에만 그쳤을 뿐… 

는 그 이후로 그저 졸업식 날짜만 세었다


그 동네는 그러니까.. 못사는 동네였다 못살아서 음울하고 음침하고 그래서 아이들은 일찍 늙어버리는 그런 동네.. 조금이라도 잘 살거나 공부를 잘하면 어떻게든 악다구니를 써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아이들이 있는 곳.

아침 조회시간마다 담임 선생은 몇몇 아이들을 불러내서 머리 검사한 뒤 애들을 때리고, 뒤에 앉은 아이들은 단란주점에 일하러 다닌 이야기(나는 중학교 여자애가 자기 몸에 술을 부어서 남자 어른들이 흘러내리는 술을 마신다는 이야기를 그때 처음 알았다. 변태 새끼들!!), 남자친구와 키스한 이야기, 작년에 목매서 자살한 친구 이야기 등을 주절주절 떠들어대던 그 곳. 


아마도 덕포동 어딘가에 살았을 그 여중생.. 아니.. 여중생이 될 뻔했던 아이내가 정말 싫어하고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어도 내 후배가 될 뻔했던 그 아이는 한집 건너 한집이 빈..그 다세대에서 좋지 않은 일을 당하면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괜시리.. 정말 괜시리... 내가 싫어했던 어두운 교실과 그곳에 앉아있는 아이들.. '너는 정말 쟤를 친구로서 믿니?'라고 속삭이던 애늙은이의 눈이 생각나서 마음이 한 구석이 불편하다.


덧붙여.

물론 덕포여중이라고 거기있는 아이들이 다 음침했을 리는 없다.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률과 출석률이 조금 떨어졌을 수는 있을지라도 밝고 명랑한 소녀들이 재잘거리는 곳이었겠지만..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경험과 그에 따른 선입견으로는 덕포여중은 어두운 교실, 겨울 어스름한 저녁에 지나가기 두려웠던 골목길, 그리고 눈동자만 어른인 아이들이 있는 곳이다.

Posted by shanti0127